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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웅천하면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고 할 정도로 돌로 유명한 곳입니다. 특히나 질 좋은 벼루를 생산하는 곳이기도 하죠. 웅천읍은 한적하지만 따뜻한 느낌이 드는 공간입니다. 

 

웅천읍을 거닐다가 집성당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웅천이 돌로 유명한 만큼 돌문화공원도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1898년 네덜란드계 미국인 화가 휴버트 보스(Hubert Vos)가 조선을 방문해 조용한 아침의 나라 '서울 풍경'이라는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림 오른쪽 멀리 보이는 경복궁 건물 세 채 중 맨 앞이 정문인 광화문이고, 그 뒤가 근정전이며 맨 뒤가 경회루가 있는 그림으로 그는 경운궁 옆 미국 공사관(지금의 미국 대사관저)에 있는 언덕에서 경복궁과 당주동, 신문로 일대를 내려다보며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흰색 도폿자락을 휘날리며 거리를 활보하는 행인을 몇 명 그려 넣어, 당시 조선 사람들의 ‘보편적 특징’을 화폭에 담음으로써 생동감을 불어넣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19세기까지 흰옷 입은 사람들은 서양인들의 눈에는 이 땅의 상징이었단 것입니다. 같은 해에 돌로 유명한 웅천에는 윤석봉 선생이  주도하고 신섭 조진학 등 유림들이 발의하여 세운 사우 집성당이 세워지게 됩니다. 집성당은 주자와 송시열의 영정을 봉안하고 향사하면서 보령과 주변 지역에 화서학파의 학맥을 전하고 그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안쪽으로 들어온 집성당의 전면에는 맞배지붕의 솟을대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우인 건물 주변으로 담장을 둘렀습니다. 매년 봄과 가을에는 보령 지역의 유림들이 모여서 분향하여 제례를 올렸던 곳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곳에서 유생들이 모여서 항일 의지를 심화하기도 했던 곳으로 지금은 매년 1회 제향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2단의 기단 위에 놓여 있는 집성당은 원형 초석 위에 원형의 기둥을 세우고 있는데 납도리식의 건물로 집성당은 정면 2칸, 측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정면의 각 칸에는 4분 합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홑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을 한 건물입니다.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모셔지게 된 것은 우암 송시열은 조선 중기 주차학의 대가로 1674년 효종 비인 인선왕후의 죽음으로 자의대비의 상복 문제가 논의되자 대공설(9개월)을 주장했다가 예를 그르쳤다는 죄목으로 덕원, 웅천, 거제, 청풍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했는데 이때 웅천에 머물렀기 때문이라고합니다. 

집성당을 보고 나오는 길에는 웅천에 흔적을 남겼던 분들이 비도 보입니다. 

웅천읍에도 웅천주민자치센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에 쉽지 않은 시간이지만 2021년에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졌으면 합니다. 

 

웅천읍의 삼거리에 오면 웅천석재와 관련된 산업단지를 알리는 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에 고읍면의 8개 동리와 신안면의 두명리, 습의면의 벽동(碧洞), 심전면의 동막리를 편입하고, 13개리로 개편하여 보령군에 속해진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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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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