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대왕태실 : 충남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 산 1-86


조선시대의 왕들의 무덤 같은 것은 대부분 경기도나 서울에 몰려있다고 알고 있었는데요.

태실은 원래 전국에 흩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만인산은 휴양지로도 괜찮고 산행하기가 어렵지 않아서 대전시민이나 금산군민들이 찾는 곳 중에 하나입니다. 그 근처에는 만인산 휴게소도 있고 대전시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만인산 푸른 학습원이라는 곳도 있습니다. 


만인산을 올라가는 중간쯤에 태조대왕 태실로 가는 안내판을 보고 걸어들어갑니다. 더워서 그런지 벌써부터 등에 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이곳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금산쪽으로 가는길이고 좌측으로 가면 태조대왕 태실이 나온다고 하네요. 


초록도 우거져있지만 덥긴 무지 덥네요. 





만인산에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도 한번 읽어보고 갑니다. 


한쪽은 태실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한쪽은 등산로입니다. 



저 큰 석상과 거북이가 태조대왕 태실인 모양입니다. 바로 옆에는 앉아서 쉴 수 있도록 벤치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조상들은 아이의 태를 생명의 근원으로 인식해서 함부러 다루지 않고 장소를 가려 묻었다고 하빈다. 특히 조선의 왕실에 자손이 태어나면 전국의 길지에 석실을 설치해 태를 봉안하는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를 태실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태실은 보다시피 태를 넣은 태함을 안치하기 위한 석실과 기단부, 난간부, 비석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문화유산이 전국에 있었는데 조선의 태실 대부분이 한군데에 모여졌다고 합니다. 그곳이 바로 고양의 서삼릉이었고 이는 조선왕조의 맥과 태실의 가치를 훼손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고 합니다. 충남에는 태실이 총 4개가 있다고 하는데요. 금산 추부면의 태조대왕 태실과 서산에 명종대왕 태실, 공주의 숙종대왕 태실, 부여에 선조대왕 태실이 그것입니다. 



원래 이성계가 태어난 곳이 함경도이다 보니 그 근처에 있던 것을 나중에 이곳으로 옮겨 조성했다고 합니다. 

더 위쪽에 올라와서 보니 왜 이쪽에 태실을 안치했는지 알 수 있을만큼 경치가 좋은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헉 이 시설은 군대에서 보던 그것과 비슷한데요. 유격장에서 유격을 외치면서 건너던 것이 갑자기 기억속에서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이런 시설을 빨리 건너는 것이 우선이었는데 아이들은 이곳을 건너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위험하네요. 그래도 한 번 건너볼까요. 조심스럽게 건너야 합니다. 노약자나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권하지 않습니다. 






조선왕조 왕자들의 태를 묻는 태실이 있던 곳은 풍수지리 명당으로 일반인이 훼손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일이었다고합니다. 왕세자나 왕세손의 태는 특별하게 보관하였다가 국운과 연관된 곳에 옮겨서 조성한 태실에 대해 잘 읽어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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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든것을 사랑하는 사람 쩡은&참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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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군 부리면 무금로 에 있는 청풍사는 고려시대에 충신이라고 일컫는 세명중 하나라고 하는데요. 삼은이라고 해서 역사책이나 TV에서 몇번 본 기억이 납니다.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인데요. 특히나 고려말에 있었던 사람들이라 더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날씨가 참 하수상한 것 같습니다. 비가 엄청나게 내렸다가 그쳤다가 갑자기 더워졌다가 급변하네요. 

조선이 건국되기 전에 포은 정몽주와 목은 이색은 세상을 떠났지만 야은 길재선생은 살아있었지만 벼슬길을 사양하고 초야에 묻혀서 살았다고 합니다. 




청풍서원이라는 비석이 멀리서도 보이네요. 

서원이라고 해서 가본곳은 바로 논산의 돈암서원이었는데요. 그곳은 규모도 있고 잘 관리되고 있지만 이곳 청풍서원은 오래된 건물처럼 보이긴 하는데 관리가 잘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정각안에 청풍이라고 새겨진 글씨가 보입니다. 




이곳에서는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라는 하마비입니다. 어차피 이곳까지 말타고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지주중류라고 씌여져 있는 비석이 앞에 있는데요. 무슨 의미인가 찾아봤더니 지주라는 바위는 중국에 있는 바위로 천만년의 거친 물결속에서도 세월을 이겨내고 그 모습을 가지고 있는 백이숙재와 같다고 말하는데요. 야은 길재 선생도 동방의 백이숙재라고 하여 후학들이 그를 기려 격리하는 지주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은 지방 유림의 오랜 숙원사업으로 조선 초기부터 건립을 계획하다가 영조 33년인 1757년 금산 군수로 부임한 민백홍이 건축한 것이라고 합니다. 금산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당중에 가장 오래된 건물중 하나라고 합니다. 




과거 이곳에서는 충절공의 높은 충절과 도덕을 이어 받을 인물을 양성하였다고 합니다.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 자료 제16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건물입니다. 



청풍명월이라는 네글자를 아는 사람은 많은데요. 그 어원은 야은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청풍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옛날부터 충청인의 온건하고 결백한 품성을 일컫는 대명사로 씌여왔다고 합니다. 



제가 찾아간 날은 청풍사의 정비사업이 진행이 되고 있었습니다. 


 


흥망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滿月臺)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금산에서 길재선생의 흔적이 이어지는 이유는 처가가 충남 금산에 있어서 그렇다고 하는데요. 길재는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에 살고 있던 신씨 가문과 결혼하여 살았는데요. 그중 길재의 증손자가 그마을에 정착해 후손이 번성하면서 이 마을은 해평 길씨 집성촌이 되었다고 합니다. 


 


금오산 기슭에 돌아와 누워 있으니(歸臥烏山下)

그 맑은 기풍 엄자릉에 견줄 만하네(淸風比子陵)

성주께서 그 아름다운 뜻 이루게 하심은(聖主成其美)

사람들에게 절의 일으킴을 권하려 함이네(勸人節義興)



금산군은 인삼의 고장으로 유명한 곳이긴 하지만 이렇다할 유적지는 많지는 않은 곳이었습니다. 금산군에는 아름다운 바위절벽이 있는 곳에 적벽강이 흐르고 있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있는곳이에요. 



때로는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는 건물인데요. 청풍사에는 세개의 비석이 있습니다. 아까 본 지주중류비를 비롯하여 백세청풍비, 불이유허비가 있습니다.  





고려삼은이 모셨다는 특이한 사찰인 동학사에도 길재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인 이곳에도 길재선생의 흔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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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든것을 사랑하는 사람 쩡은&참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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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칠백의총을 드디어 찾아가보았습니다. 금산에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찾아가볼 기회가 없었거든요.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700여명의 의병들이 묻혀 있다는 이곳은 1592년 8월 18일 조헌이 이끄는 의병과 승장 영규가 이끄는 승병이 힘을 합쳐서 금산성에서 전사한후 시체를 모두 수습할 수 없어서 한꺼번에 묻었다는 곳이죠. 



이곳에 있는 건물은 의총문이라는 곳을 통과하면 나오는 취의문, 기념관,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의비와 기념관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여름이 와버린 것 같은 날씨입니다. 너무 더운데요. 아주머니들은 햇볕에 탈까봐 긴옷을 입고 오셨습니다. 칠백의총에 '총'이 붙는 이유는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연못을 내려다보면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계시네요.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한바귀 천천히 돌아봐도 좋은 곳입니다.  매주 토요일 1시부터 4시까지 전통 활쏘기 체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칠백명의 의병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아니구요. 전투 당일인 18일에 권율장군과 합세하여 금산성에서 적을 협공하기로 했으나 기일을 늦추자는 권율장군의 편지를 못받는 바람에 의병부대는 금산 연곤평 전투에서 결전을 벌이다가 모두 순절하였다고 합니다. 



의총문을 지나가봅니다. 


 


칠백의총을 만들고 이후 순의단이 설치되면서부터 각 지방수령과 유생의 성금과 의연금이 답지하여 옆에 종용당서원(從容堂書院)도 세워졌다고 하는데요. 그뒤 일제강점기인 1940년에는 일본인들이 진화사(進化社)를 만들어 사우(祠宇)와 의총을 허물고 일군순의비를 폭파한 뒤 제토(祭土)를 강제로 팔아버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칠백의총에서는 매년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과 민속놀이체험을 하도록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데요. 작년에는 집을 만들어 여치를 기르는 민속놀이인 ‘여치집 만들기’를 했다고 합니다. 여치집 만들기는 여름철 보리 타작 후 남은 보릿짚 등을 이용해 여치가 살 수 있는 집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농촌의 문화를 즐기고 칠백의사의 고결한 순의 정신을 알리는 그런 행사는 자주 있을수록 좋은 것 같습니다. 




정말 칠백명이 모두 묻혀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그 순의는 기억해야 될 것 같습니다. 


 


칠백명의 의병이 모두 순절했지만 큰일을 했다고 합니다. 고바야카와 타카카게라는 사람이 이치 싸움에서 권율 장군에게 1차 패한 후 금산성에 머무르며 호남 진출을 다시 노리고 있었는데, 수적으로 열세인 700의병들이 이를 저지했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기에 지금 대한민국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그림도 있습니다.  순변사 이일이 적을 맞아 싸우게 되는데, 개령현(지금의 김천시 개령면 지역) 사람이 왜군이 선산에 이른 걸 알고 “적군이 가까이 왔다”고 알렸다. 하지만 이일은 “여러 사람을 의혹 시킨다”고 그를 목 베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임진왜란 당시의 흔적들이 아직도 잘 보존이 되고 있네요. 



무려 만 5천명의 왜군을 맞아 사웠던 의병들 그리고 그들을 저지하는데 성공은 했지만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그들의 혼이 그림에 새겨져 있습니다. 


칠백의총 

상세정보

주소
충남 금산군 금성면 의총길 50
(우) 32708(지번) 금성면 의총리 135-1
전화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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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든것을 사랑하는 사람 쩡은&참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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