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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化城面) 구재리에 있는 상의사에는 채제공 선생의 초상이 있습니다. 채제공의 영정은 현재 4본이 알려져 있는데요. 나주(羅州)미천서원(眉川書院) 소장의 흑단령본(黑團領本)은 분실되어 지금은 사진만이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채제공 선생의 영정이 있다는 청양의 상의사는 보령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화성중학교를 입력하고 찾아가셔도 갈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정승을 지낸 번암 채제공(1720~1799) 선생은 화성면 구재리가 고향으로 79세의 생애동안 영조와 정조라는 뛰어난 두 국왕이 이끈 국정의 중심에서 의미 있는 여러 개혁을 주도한 조선시대의 명재상이었다고 합니다. 




관련된 분들을 비도 옆에 세워져 있는데요.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것들입니다.




청양 상의사에 있는 채제공의 초상화는 특히 정조대에 절정에 달했던 사실주의적 시각 표현의 한 극점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관복 표현은 그런 모습을 더욱 잘 보여 준다. 즉 금관(金冠)과 그 양(梁)의 정교하고 세밀하다고 합니다. 




드라마등에서 간혹 표현된 채제공 선생을 접해본 기억이 있습니다. 

 




세종 대에는 명재상 황희의 도움으로 화려한 세종 문화가 이룩되었고, 정조 대에는 명재상 채제공(蔡濟恭)의 도움으로 조선의 르네상스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채제공의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 번옹(樊翁)입니다. 1720년(숙종 46)에 지중추부사 채응일(蔡膺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주변은 정비가 잘되어 있는데요. 매년 이곳에서는 청양군과 이 지역의 유림들이 참석해서 제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백성의 어려움을 돌보고 세상의 의리를 올바르게 세우기를 바랬던 채제공 선생의 혼이 이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채제공 하면 독상(獨相)으로도 유명합니다. 실록에는 “여러 해 독상을 지내 백 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독상이란 가장 높은 관직인 삼정승, 즉 좌의정, 우의정, 영의정 자리에 다른 정승 없이 홀로 국정을 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영정이 안에 있지만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채제공 선생의 명성은 이미 익히 잘 알기에 그 사람을 생각해봅니다.





한림(翰林)의 권지(圈紙)를 들여오라고 명해 특별히 채제공에게 2개의 어점(御點)을 치고 소시(召試)에 응하라고 명했다. 채제공은 권점이 없었는데 바야흐로 기주관(記注官)으로 입시했으니 그의 재능을 아까워해서였다.



《영조실록》 권68, 영조 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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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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