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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은 옛날에 어떤 사람들이 살던곳인지 어떤 의미가 있던 곳인지 알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최근에 금산역사문화박물관이 개관을 했는데요. 그곳은 아직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조만간 그곳으로 발길을 해볼 생각입니다. 금산의 충효예공원은 금산향교를 중심 두고 주변공간으로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금산의 옛날 분들의 흔적도 접해볼 수 있지만 이곳의 주된 컨셉은 바로 효입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은 "충과 효를 함께 실천하다"를 몸소 보여주었던 분이며 도산 안창호, 만해 한용운, 단재 신채호 선생은 모두 겨레에 대한 효를 직접 실천했던 분들입니다. 



금산이라는 지명의 연혁은 1896년 고종 칙령에 의해 충청도 공주부의 금산군과 진산궁이 전라북도에 편입이 됩니다. 지금은 충청남도에 포함이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전라북도에 속해 있기도 했습니다. 





금산군에서는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홍범식 금산군수는 한일병합이 되자 조종산에서 목을 메어 순절을 했다고 하는데요. 전국 군수 중 유일하게 정충대절의 절개를 지킨 군수입니다. 




조선태조의 태실이 바로 금산군에 속해 있었군요. 1293년에 태실을 만인산에 봉안한 후 진주군으로 승격이 된 것이죠. 





충절의 고장 금산의 인물들입니다. 최초 천주교 순교자인 권상연과 역시 최초 천주교회 순교자인 윤지충, 조선의 선비이며 후학의 교육에 정진했던 윤선거등이 금산의 인물입니다. 





이렇게 공원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죠. 승당 임영신, 옥계 유진산, 임희재등은 금산이 오늘날 있게 한 인물들입니다. 





공원에서 조금만 위쪽으로 올라오면 금산향교가 나옵니다. 홍살문이 있고 옆에는 금산향교의 연혁을 볼 수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묻혀 있는 만큼 금산의 위상은 조선에서 상당히 큰 역할을 차지했을 겁니다. 금산향교와 금산에서 나온 인물들을 알리는 비가 빼곡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수생연못이 만들어져 있어서 한 여름의 더위를 잠시 식혀볼 수 있습니다. 



수변생태 식물도 있고 생물들도 연못 안에 있습니다. 효라는 것은 조선시대에는 80세가 중요한 기준이었다고 합니다. 세종대에도 남녀의 귀천과 신분을 초월하여 연령이 80세가 넘으면 대우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효라는 단어 하나로 모두 정리가 되는 공간입니다. 효는 상호적인 가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부모가 해야 할 도리를 다하고 자식이 자식이 해야 할 도리를 다할 때 효가 바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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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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