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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와 대전을 오가는 길목에 잘 살펴보면 작은 서원으로 가는 간판을 볼 수 있는데요. 공주에는 이곳 명탄서원을 비롯하여 충현서원, 용문서원등이 공주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공주는 백제의 수도였으며 한대의 오경박사제도를 도입하는등 역사 문화 도시이면서 교육도시로서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대전에서 공주로 가다보면 박동진 소리전수관을 가기전에 밑의 도로로 내려가면 명탄서원으로 가는 이정표를 볼 수 있습니다.



공주에서 가장 작은 마을일 것 같은 이 공간에는 옛 사람의 흔적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지난달 20일 이곳에서는 추모제향이 봉행되었는데요. 명탄서원은 문화재자료 제70호로 공산 이씨 이명성과 이명덕(1374~1444) 형제의 학행을 기념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두 분을 모시는 의미도 있습니다. 




주변에는 사시사철 푸르름을 상징하는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습니다. 곧은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명탄서원이 잘 어울리는 이유는 이명성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끝가지 벼슬을 나아가지 않았던 절개가 있는 이명성과 이명덕은 조선 초기에 4명의 왕을 모셨던 명신이기도 합니다.  



명탄서원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사우 충절사는 1956년 다시 건립하고 이명성, 이명덕 두분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매년 봄에 제향을 지내고 그 뜻을 기리고 있다고 합니다. 





한적하니 조용하게 살만한 마을입니다. 나이가 들면 이렇게 조용한 곳에 내려와서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월송동사송정경로당은 이 부근에 사시는 노인분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입니다.




명탄서원이 있는 월송동에는 사송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요.  공산이씨의 정자로 공주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기도 한데요. 사송정은 희암선생집에 따르면 이중환의 5대조인 이상의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사송정은 이중환 가문이 건립한 정자라고 합니다. 금강 주변에는 사송정외에도 금벽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조상서의 산장이며 택리지로 유명한 이중환은 이곳에서 머물면서 택리지를 썼다고 합니다. 





충절사라는 이름에서는 이곳에 모셨다는 두 형제의 절개와 혹은 자신의 의지가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저도 남자는 아니지만 절개와 충의 같은 것은 잘 알고 있는데요. 그 의미가 요즘 사람들에게도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맹자라는 책을 보면  맹자가 이런 말을 남겼는데요.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으니, 모두 '천하국가'라고들 한다. 그런데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집에 있고 집의 근본은 한 사람의 몸에 있다." 그만큼 한 사람의 몸을 잘 관리하고 정신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명탄서원은 지금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0호로 지정되었으며 건립은 1490년(성종 21)로 소제지는 충청남도 공주시 월송동 239에 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도로가 나서 그렇지 옛날에 그냥 옛길이 있을때는 많은 선비들이 이곳을 찾아왔을듯해요. 







명탄서원 내에는 건물로는 3칸의 사우와 8칸의 재실 겸 강당과 6칸의 수호산과 양옆 협문으로 정문등이 있고 안쪽에 사우에는 이명성돠 이명덕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창건과 동시에 명탄이라고 불리던 것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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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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