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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 있는 정림사지와 정림사지 박물관은 백제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교육이나 체험으로서 좋은 장소입니다. 가끔 부여를 가면 정림사지를 한번씩은 들러보는데요. 정말 마음의 위안을 받는 장소이면서 고즈넉한 곳이라서 좋은 것 같습니다. 그냥 탑 하나만 있고 나머지 건물은 없는데 불구하고 저에게는 좋더라구요. 




신라의 불국사처럼 정림사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아왔을텐데 아쉬운 부분입니다.


불국사에 있는 석가탑이나 다보탑과 달리 정림사지 5층 석탑에는 디테일이 있고 위용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균형도 상당히 좋고 조각들을 보면 정말 잘 만든 석탑이라는 느낌이 무지한 저조차 느낄 수 있게 해주더라구요. 




유독 추운날이어서 그런지 하늘이 파랗다 못해 생생한 느낌이 확 살아납니다. 파란 하늘과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정림사지 5층 석탑입니다. 




정림사지 박물관을 둘러보았는데요. 전체적인 컨셉은 바로 백제불교문화의 흐름을 담아 놓았다는 점입니다. 백제는 삼국사기에 침류왕 즉위년에 호승 마라난타가 진나라로부터 와서 불교가 안착하였고 이후 백제는 불교를 국가통치의 이념으로 삼고 일본으로 불교전파를 이루었습니다.



백제의 침류왕은 마라난타를 경예하였으며 384년에 불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는데요. 당시에 동아시아의 불교는 율법과 윤회, 해탈을 중심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철학적 종교로 자리잡았습니다. 과거 다른 국가가 그렇듯이 종교를 통해 지배체제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가발전의 사장적 바탕이 된 정신적 기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나무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목간이라고 하는데요. 이 목간은 부여 능산리사지에서 출토된 양면에 먹으로 글씨가 쓰여졌으며 4월 7일 이라는 날짜는 석가탄신일 하루 전에 석가탄생회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고 보희사라는 사찰의 이름이 적혀져 있다고 합니다. 




아까본 목간보다 이 것은 더 작은데요. 자기사라는 사찰명이 쓰여진 목간으로 자기사에서 능산리사지로 물품을 보낼때 썼던 꼬리표라고 합니다. 




참으로 오래된 고서입니다. 호암사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유서깊은 사찰로 호암사는 지금의 규암면 호암리는 당시 사찰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금동불입상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정림사지하면 익산의 미륵사지를 연상케 하는데요. 백제는 중문-탑-금당이 일직선상에 배열된 구조로 예불공간은 3개 원으로 분화되었지만 강당은 하나로 전체를 통합하는 역할을 합니다.









정림사가 원래의 모습이었을때를 모형으로 복원을 해두었습니다. 가람배치는 강당(講堂)과 금당(金堂)과 중문(中門)이 일직선상으로 놓여 있고, 강당과 중문을 연결하는 회랑(廻廊)이 있으며, 금당과 중문 사이에 1기의 탑을 배치한 일탑식가람(一塔式伽藍)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부여에 백제역사유적지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중심은 정림사지이고 그 밑으로 나성이 있으며 위로 올라가면 능산리고분군과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이 있는 형식으로 백마강은 부여의 옛고도를 휘어감아 내려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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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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