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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 덕곡면 반성리 740에 가면 동평군 시호 양평공 경주부윤 정종을 기리는 별묘였다가 1794년 정절공 설학재 정구 고려 좌간의 대부를 주벽으로 모시고 양평공 정종을 배향하여 서원으로 된 반암서원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유적비가 있는데요. 설학재 정구선생 유적비, 동평군 선경 신도비, 양평공 동평군 종 신도비, 양평공의 맏아들 봉천군 제주목사 인울을 추모하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서원의 많은 곳을 돌아다녀 보지만 이렇게 잘만들어지고 다양한 귀부가 있는 곳은 많지가 않죠. 이전에 왔을 때도 보긴 했지만 귀부를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래전에 세워진  삼국시대의 석비는 대체로 비좌 없이 그대로 땅에 묻어 세우거나, 혹 비좌가 있다 하더라도 자연석을 비좌로 삼았을 뿐이었지만 통일신라시대 이후 당나라 석비의 영향을 받아 귀부를 비좌로 삼게 되어 그 뒤로 이러한 형태는 고려·조선시대를 통하여 석비의 전형적인 형식으로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생긴 것은 마치 용과 같아 보이지만 형태는 모두 거북처럼 생겼습니다. 거북이 만년을 산다는 장수의 상징으로서 비의 영원성을 표현하는 데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거북이의 모습의 묵직함이 남다르네요. 현존하는 귀부 중 가장 오래된 것은 661년에 세워진 신라태종무열왕릉비(국보 제25호)의 귀부로서, 목을 앞으로 쭉 뻗고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다문 거북의 모습이 사실적이라고 합니다. 이 귀부의 모양도 남다른 것 같습니다. 




이 귀부는 만들어진지 얼마 안되는 것입니다. 올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요.  조선시대에도 일부 귀부가 나타나기도 하나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그 양식도 통일신라시대를 답습하고 있지만 훨씬 퇴화하고 도식화되었다고 하네요. 



반암서원이 있는 반암리는 동래정씨 일파의 연원지로 정종을 비롯한 정비, 정홍석, 정인운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고 하네요. 





안쪽으로 들어오면 강당인 반암서당이 있는데요. 소장 자료로는 경내의 현판인 ‘반암서당(盤巖書堂)’, ‘숭덕재(崇德齋)’, ‘수궐문(修厥門)’, ‘고경문(高景門)’과 비석 4기가 남아 있습니다. 


뒤쪽에 자리한 사당인 세덕사(世德詞)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 맞배지붕 형식인데요. 전면에 반 칸의 툇간을 구성하여 의례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사당으로서는 보기 드문 다포 형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래된 분을 기리는 비는 이신과 비신과 귀부로 나누어지는데 이수에는 보주와 제액이 그리고 몸통에는 비신 귀부에는 귀두, 여의주, 비좌와 안상이 있고 거북의 등을 상징하는 귀갑문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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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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