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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에는 박열의사 기념사업회가 있는데요.

2001년에 창립된 박열의사 기념사업회는 문경에 기념공원과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여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박열의사 기념관이 있는 곳에는 박열의사와 가네코후미코의 구국의지와 희생정신이 잠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지나갔지만 그 정신은 잊혀지지 않은 것이죠.



영화로도 개봉이 되었지만 책이 주는 감동만큼은 안되는 것 같아서 출간된 서적을 먼저 만나보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과 일본인의 사랑 그리고 일본의 상징적인 인물 천황의 폭살을 기획한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의 이야기는 상반기 핫한 이슈였습니다. 



조선인에게는 흑역사로 기록되어 있는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은 광기에 사로잡힌 히틀러처럼 조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합니다. 문경에 흔적이 남아 있는 박열과 조선땅에서 살아본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조선인을 사랑했던 가네코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만큼 다이나믹 하네요. 




박열 - 개새끼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사형판결을 받기 전에 가네코는 어릴 때의 불우한 환경과 성적인 학대로 인해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다 박열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가네코 후미코는 그와 동거 계약서를 쓰죠 


1. 동등한 입장에서 동지로서 동거한다.

2. 아나키스트 활동에서는 가네코 후미코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3. 한쪽의 사상이 타락하여 권력자와 손잡는 일이 생길 경우 즉시 동거생활을 청산한다. 




1926년 3월 25일 최종심에서 이들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이들에게 사형은 쟁취의 대상에 불과했고 결국 그 뜻을 이룬 것과 같았다. 사형을 선고하자 가네코 후미코는 만세를 불렀고, 박열은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를 자네들 맘대로 죽일 수 있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는 말을 남깁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떨쳐버리는 용감한 혼을 가져야 한다. 

나는 당연히 용감한 혼을 가졌다.

세상에 어떠한 것을 정말로 무서워해야 할 것인가?

그것을 나는 놈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들이 내 목을 단두대에 걸 수는 있을지언정 내 손으로 뿌린 씨앗을 태워 부술 순 없을 것이다." 

- 강자의 선언 중



박열기념관에서는 당시의 다양한 체험이나 그 시대의 느낌을 받아볼 수 있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고 희망도 없을 것 같은 일본 땅에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옥중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옥중 시를 주고받습니다. 이 둘은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곧 은사령을 받아 무기형으로 감형되었습니다. 이후 1926년 7월 23일 가네코 후미코는 불꽃같았던 삶을 자살로 마무리합니다. 이때 나이가 23살이었습니다. 




박열은 가네코 후미코가 자살한 이후 계속 감옥에서 있다가 1945년 10월 27일 아키타 형무소에서 석방된 후 김구와 이승만을 만나게 됩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3일 뒤 1950년 6월 28일 서울에서 납북된 후 1974년 1월 17일 북한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가네코 후미코 


재판소에서 돌아오는 겨울밤

감옥 마당에 내려서면

초승달이 차갑다


겨울밤 감옥에서 읽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연애소설


죄수복 걸친 벙어리 여죄수

소리 없는 세상에도

고민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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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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