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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구도로는 창벽로라고도 부르는데 평소에는 자주 가는편은 아닙니다. 이날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창벽로로 드라이빙을 했는데요. 가다가 보니 이유태유허지(충남 공주시 중등골길 54-7)이라는 안내판이 있어서 따라 들어가봤습니다. 유허지라는 의미는 그곳에 그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는 말이더라구요. 초려 이유태가 바로 이곳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독서로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눈이 많이 와서 그런지 이유태 유허지에 그 후손의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고 앞에서 놀고 있더라구요. 어릴때 눈썰매는 정말 시간가는줄 모르게 하는 재미있는 놀이죠. 



중동정사라는 간판이 붙여져 있었는데요. 이곳이 예전에는 중동골이라고 불렀기에 중동정사라는 이름을 붙이고 후학을 가르친 것 같습니다. 




유허지 안에는 건물들이 있었는데요. 계단에 눈이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초려 이유태는 57세가 되던 해에 용문서원을 열었다고 합니다. 조선의 후기로 올수록 지식인들이 사회개혁을 하기 위한 많은 활동을 했다고 들은적이 있는데요. 이유태 선생도 이때 백성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많은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초려 이유태의 유허지는 이곳에 있지만 이유태선생의 역사공원은 세종시에 조성이 된다고 하는 기사를 본적이 있었어요. 이곳이 역사공원으로 조성되기에는 부지가 좁기는 하죠. 





중화당이라는 이름은 서울의 오래된 궁에서 들어본적이 있었는데요. 정조가 세자를 위한 궁으로 중화당이라는 곳을 만들었다고 문화해설사에게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명덕사같은 사당은 선현과 조상의 업적과 넋을 기리고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요. 이곳의 주인인 이유태를 제향하는 것이겠죠. 가야산에 갔을때 똑같은 이름을 들어본적이 있는데요. 흥성대원군이 남연군의 제각을 지으며 붙여준 이름이 명덕사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용문서원의 안쪽인데요.  용문서원은 사우 6칸, 신문 1칸, 좌우 협문 각 1칸, 장서각 6칸, 동재 6칸, 유물 전시관 8칸, 강당 8칸, 고사1칸, 대문 3칸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다 구경했으니 옆에 조그마한 쪽문으로 나가야되겠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곳까지 들려옵니다. 남녀 아이 세명이 즐겁게 눈썰매를 타는 모습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이유태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 찾아보니 본래 한미한 출신으로서 처음에는 민재문(閔在汶)에게 배우다가 김장생(金長生)·김집 부자를 사사, 그 문하의 송시열·송준길·윤선거(尹宣擧)·유계(兪棨)와 더불어 호서산림 오현(五賢)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 사람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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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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