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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는 원래는 잣고개와 용소마을 중간 지점에 있었다. 사당 앞을 지날 때 말에서 내리지 않으면 말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못한다고 하여 누구나 말에서 내려 앞을 지나갔다고 한다.  어느 해 충청감사가 이곳을 지나던 중 하인의 충고를 무시하고 말을 탄 채 그대로 지나가려 하다 말굽이 땅에 붙어 꼼짝할 수가 없었는데 화가 난 감사는 말의 목을 베어 사당 안에 있는 장군의 초상화에 온통 피를 묻혀 놓고 그 곳을 떠났다.

 

 

 

신라 때부터 사당을 지어 나라에서 봄 가을로 제사를 지냈으며, 고려 때는 관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사당이 불타 없어진 것을 철종 2년(1851)에 백곡면 가죽리에 죽계사(竹溪祠))라는 이름으로 다시 지었고 고종 1년(1864)에는 서원 철폐령으로 헐리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삼국통일의 주역이였던 김유신(595∼673)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김유신은 15세 때 화랑이 되었고, 무열왕 7년(660) 상대등이 되었다. 그 뒤 중국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나당연합군의 대총관이 되어 고구려를 정벌하고 삼국통일(676)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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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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