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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신동엽이 아니라 시인 신동엽이 몰랐던 1인입니다.

백마강을 따라 걷다가 시인 신동엽시비를 보고 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신동엽에 대해 찾아보니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더라구요.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군) ~ 1969년 4월 7일 (향년 38세)

 

1960년대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자랑스런 민족시인이라는 신동엽시인은 거짓과 불의에 대한 항거와 저항을 말하는 시인이었으며 민주사회에 대한 열망을 남달랐던 시인있었다고 합니다.

 

 

 

 

서둘고 싶지 않았다는 신동엽시인은 참여문학의 대표적 문인이었습니다.

 

내 인생을 시로 장식해 봤으면

내 인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

내 인생을 혁명으로 불질러 봤으면

세월은 흐른다.

그렇다고 서둘고 싶진 않다.

 

 

신동엽시비가 사람들 왕래가 많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때 자신이 원하지 않았어도 인민군으로 혹은 국군으로 활동하면서 양측의 신념과 사상을 접하게 된거죠. 그속의 부정과 사회비판, 현실참여가 그를 바꾸게 된거죠.

 

 

 

여러개의 시가 신동엽 시비 옆에 있었습니다.

 

너에게

나 돌아가는날

너는 와사 살아라

 

두가 가지 못할

차마 소중한 사랑

 

 나 돌아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묵은 순터

새 순 돌듯

 

허구 낳은 자연중

너는 이 근처 와 살아라

 

 

완충지대

 

하루 해

너의 손목 싸쥐면

고드름은 운하 이켠서

녹아버리고

 

풀 밭

부러진 허리 껴 건지다 보면

밑동 긴 폭포처럼

역사는 철철 흘러가버린다

 

피 다순 쭉지 잡고

너의 눈동자, 영 넘으면

완충지대는

바심하기 좋은 이슬젖은 안마당...

 

 

 

 

 

새로운 시도도 많이 했으며 현실적인 시인이었던 신동엽은 국민방위군에서 소집 해제된 후 귀향 길에 민물 게를 날것으로 먹게 되는데 이로 인해 간디스토마라는 병을 얻게 되어 사망하게 됩니다.

 

신동엽 시인의 시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금강>이라는 시는 1894년 3월의 동학혁명(작품의 주조를 이루는 사건과 시정신의 출발), 1913년 3월의 기미독립운동, 1960년의 4월의 혁명을 하나로 연결하여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연속적인 현실로 일깨우는 분노의 저항시라고 합니다.

 

 

신동엽시비 바로 옆에는 불교전래 사은비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이전되었다는 비석만이 남아 있습니다.

 

영원한 4월의 시인이라는 신동엽은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라고 외쳤던 향기가 남은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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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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