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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사에서 전투를 치룬 사람으로 가장 많이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김좌진입니다. 독립운동가인 백야 김좌진은 이곳 홍성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났는데요. 일찍이 개화사상이 있던 김좌진 장군은 집안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재산을 청산한 적이 있다고 하니 실천하는 행동가였던 모양이에요.

 

 

 

 

 

 

여름의 햇살이 무지 따갑네요. 조금만 걸어도 덥네요. 장군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부지가 상당히 넓었습니다.

 

 

잠시 김좌진의 흔적을 읽어봅니다.

1889년 12월 16일에 태어난 김좌진은 부유한 호족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5살에 노비문서를 불태웠다고 하는데 그 나이에 중요한 재산이었던 노비문서를 태울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천천히 김좌진 생가로 걸어갑니다. 대문의 왼쪽편에 위치한 것은 마굿간입니다.

 

 

생가 오른쪽에는 백야 기념관이 있습니다. 기념관을 보시려면 낮에 오시는 것이 좋습니다. 늦은시간이면 일찍이 문을 닫기 때문이죠. 기념관은 1만 618㎡ 부지에 생가를 비롯한 기념관, 사당, 백야공원 등의 부속 시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금더 설명이 필요하신 분들은 이곳 관리사무소에 요청하시면 설명을 해줍니다.

 

원래 김좌진 장군의 생가는 터만 남아 있는 것을 1992년 복원한 곳으로 안채, 사랑치, 광이 있습니다.

 

 

광도 복원이 잘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좌진 생가에 가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이는 문구는 "청백을 전하는 집안은 800년에 이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이미 우리가 먼저였던 모양입니다.

 

 

 

1930년 김좌진 장군이 공산주의자였던 박상실에게 암살 당하기 전까지의 다양한 흔적이 이곳에 있었습니다.

김좌진의 이름은 2013년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1천800t급(214급·SS-Ⅱ) 잠수함인 '김좌진함' 진수식을 거행하면서 다시 등장합니다. 김좌진함은 1번 손원일함, 2번 정지함, 3번 안중근함에 이은 4번째 214급 잠수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생가를 둘러보았으니 이제 기념관으로 발길을 했습니다.

 

역사시간에 가장 많이 들었던 사건중에 하나는 바로 청산리 전투입니다. 역사 시험에 단골문제였죠. 연도와 장군등을 외우는 것은 필수 였습니다. 백야 김좌진 장군 흉상을 보니 과거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네요.

 

 

 

 

김좌진 장군의 일생에서 부터 독립운동을 하면서 그가 보였던 행동이나 행적이 이곳에 있었습니다.

한 달 보름전인가 홍성8경 도보여행이 홍성군청소년수련관 주최로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김좌진생가를 방문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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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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