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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 아버지가 묘를 옮겨서 이장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철종사후에 자신의 아들을 왕에 올렸으니 어느정도는 맞는것 같지만 일제에 의해 주권을 빼앗기고 원인을 알지 못하는 의문스러운 죽음과 그 손자인 순종 역시 자유롭지 못했으니 너무 욕심이 컸던 걸까요? 게다가 손녀인 덕혜옹주도 비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남연군묘에 대한 설명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명당이라는 것은 말그대로 땅이 좋은 곳에 조상을 모셔 후손이 잘살게 된다는 곳입니다. 좋은 터를 잡기 위하여 적선과 정성을 몇 대에 조성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원래 이곳은 가야사가 있던 곳입니다. 대원군이 묘를 옮기면서 이곳을 폐쇄하고 가야사지로만 그 흔적을 유지해왔습니다. 2012년 시굴조사, 1차발굴조사를 거쳐 2013년에는 2차 발굴조사를 했습니다. 작년에는 3차발굴조사를 마치면서 '가야사'의 사명 및 사역을 추정할 수 잇는 다양한 유물뿐만이 아니라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8동의 건물과 가람배치를 확인하였다고 하네요.

 

왕릉이라고 부를정도는 아니지만 길지같아 보이긴 했습니다. 조성 왕릉중 명당이라고 부를만한 곳은 시대를 이어 건원릉(태조), 헌릉(태종), 영릉(세종), 건릉(정도), 남연군묘 등이 있다고 하는데 모두 왕의 자리인데 군으로는 남연군만 속해져 있습니다.

 

 

 

이곳은 예산에 속해있으며 덕산면 상가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예산2경이라는 가야산에 있습니다.

 

 

여기서는 정말 명당인지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라가보면 조금 다릅니다.

 

 

이건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르지만 최근에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기념물 제80호라는 남연군묘입니다.

 

 

사방이 훤하게 뚫려 있으며 좌우를 감싸고 있는 산에 이곳에서 바라보면 정면이 환하게 뚫려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묘를 이장하는 것은 많은 고민이 필요했을 겁니다.

대원군은 부친인 남연군의 묘를 옳길때 상여를 이곳 광천리 마을에 줬다고 하네요. 그 이후로 마을 이름을 '남은들'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진짜 명당은 왕을 내는 자리가 아니라 자손들이 평온하게 살게 하는 자리라고 합니다. 욕심을 가지고 다가가면 잠시 권력과 금전을 가질지는 몰라도 그 것이 대를 이어 끝까지 이어진다고 하지는 않는다고 하네요. 동영상으로 보면 알겠지만 길지는 길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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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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