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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돌아다니기에 덥지 않은 날씨라서 그런지 여행다닐만 합니다.

오늘은 석가탄신일이 낀 황금연휴 마지막날인데요. 황토로 지어진 집을 하나 발견했는데 그곳 김동진 가옥에는 지금 할머니 한분이 살고 계셨습니다. 나이가 많이 드신분이라서 그런지 허리가 많이 휘어지셨더군요. 사진 한장 찍자고 권해보았는데 노인네 사진을 찍어봐야 머하겠냐며 한사코 거부하셔서 못찍었습니다. 그래도 집에 대해서는 잘 알려주셨습니다.

 

 

 

서산은 예로부터 농경지가 드 넓은 곳이라서 부농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농민중에 부농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였는데요. 특히 19세기에는 다양한 농사방법의 진화나 농기구가 좋아져서 대규모로 농사를 짓곤 했는데요. 부를 축적한 농민이 양반의 신분을 사거나 해서 신분이 상승되어서 부농이면서 합법적으로 이런 집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집안에 이렇게 넓은 밭과 저 뒤에 뒷동산은 이 집이 어느정도 부농이었을까라는 추측을 하게 해줍니다.

많은 사진작가와 글을 쓰는사람이 이 집을 많이 방문한다고 하더라구요. 가끔은 귀찮을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초가가 아니라 멋스러운 기와집입니다. 면적은 1,068㎡로 안채, 사랑채, 익랑채, 대문채가 배치되어 있는 이곳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대문을 들어오자마자 만나는 것은 바로 이 사랑채입니다. 사랑채에는 아궁이와 누마루가 설치되어 있는데 가끔 이곳에 불을 때기도 한다고 하네요.

 

 

이곳이 언제지어진지는 할머니도 정확하게는 모르신다고 하더라구요.

여기에 쓰여진 기록으로는 1932년에 지어졌다고 되어 있는데 할머니분 말씀으로는 시어머니한테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합니다.

 

 

사랑채 뒷편으로 오면 지금 살고 계시는 안채가 나옵니다. 정면은 6칸, 측면 3칸의 규모인데 정면 입구가 유리로 되어 있는데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그 형식을 따라 변경된것 같다고 합니다. 사랑채 앞에는 정원이 있고 안채 앞에는 이렇게 너른 마당이 자리하고 있어서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잠시 안채의 대청마루에 앉아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조선시대에는 농민이 부농이 되었던 시기가 150여년정도 되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산업도 바뀌었고 모든 것이 IT에서 창출되고 유통업등에서 큰 기업이 나오지만 먹는것이 최고일때는 농사만큼 좋은 수단도 없었을 겁니다. 일제 마지막 시기에 어린시절을 보내셨던 할머니는 세월의 변화가 무상하셨나 봅니다.

 

 

직접 장을 담구기도 하신다고 합니다. 뒤에는 옹벽처럼 만들어놓았습니다. 옹벽은 흙이 무너질까봐 만들어놓은 것인데 그냥 뒤를 싹 밀어버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집안을 여러바퀴 걸어보는것만으로도 운동이 될만큼 집의 규모가 꽤 큰 편입니다. 부럽네요. 조그마한 아파트공간에서만 돌아다니다가 이렇게 너른 집을 보니까요.

 

좌측에 통로가 보이는 이 건물은 익랑채로 사랑채와 이어져 있습니다. 문간과방, 창고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뒷편으로 가보니 수세식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사시는곳은 그다지 크지 않은데 사랑채와 익랑채는 큰편입니다.

 

 

할머니와 더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귀찮아 하실까봐 그만하고 나왔습니다. 문득 사랑채 위쪽을 바라보니 상형문자와 한문이 같이 자리한듯한 알듯 모를듯 기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과나무, 배롱나무, 갖가지 분재와 과일나무들이 안마당에 심어져 있는 꿈을 꾸곤 하는데 여기 사시는 분은 그 꿈을 이루고 사시네요. 오래도록 건강하게 사시길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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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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