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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시대에 정조와 대립했던 정순왕후의 생가에 사람이 살고 있더군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폐끼치지 않게 들어가보았습니다.

영화 역린과 TV 드라마에서 정순왕후를 보았기에 더 가깝게 느껴지더군요. 사람이 살면서 이곳을 관리하고 있으니 더 잘 유지되는것 같습니다. 서산에서 태어나 궁으로 들어오기까지 이곳에서 자라났습니다. 정조 사후에 순조의 수렴청정을 했는데 남인들과 노론 시파를 공격하는 노론 벽파의 배후세력으로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죠.

 

 

 

사람이 살고 있으니 조심해달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습니다.

정순왕후 간택 당시의 일화가 전해지는데요. 3간택에 들어선 정순왕후는 방에 들어갔지만 마련된 방석에 앉지 않고 바닥에 앉아 있었습니다. 윗전들이 이유를 묻자 정순왕후는 이리 대답했습니다.

 

방석에 아비의 이름이 있어 그위에 앉으면 아비를 깔고 앉는 것이기에 앉을 수 없었다고 했고 이어 대궐 지붕에 기와골이 몇개냐고 물으니 다른 이들은 모두 고개를 밖으로 빼고 대궐 지붕을 쳐다 보고 헤아렸는데 정순왕후만이 앉은채로 대답을 올렸습니다.

 

어찌 알았느냐는 물음에 마당에 빗물이 떨어져 골이 패인 것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가장 맛있는 반찬을 묻자 모든 음식에 간을 맞추는 소금이라고 대답한 것이나 가장 아름다운 꽃은 옷을 해 입을 수 있는 목화꽃이라고 했습니다. 목화가 들어온것은 의복의 상당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기에 의미가 있죠.

 

 

솟을대문을 지나 들어가면 정면3칸, 측면1칸의 규모의 대문채가 보입니다. 꽃이 이쁘네요.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있는것이 아니라 마당이 좀 넓은 편입니다.  

 

 

대문의 양쪽에는 장작등이 쌓여져 있는 창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랑채 서쪽을 돌아 안채로 들어가는 공간입니다. 중문간에 들어서면 안마당을 중심으로 'ㄷ'자형 안채가 감싸고 있는 형태입니다.

 

우물이 우측에 있고 크고 작은 화분들이 있습니다. 조금 특이한 것은 사랑채와 안채를 합쳐서 'ㅁ'자형 평면을 만둘어두었다는 것입니다. 정면에 보면 기둥이 조금 높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지형상으로 보면 모두 같은 높이인데 안채의 지붕이 사랑채보다 훨씬 높에 보입니다. 이런 가옥은 영남지방 가옥의 특징이라고 하네요. 정면에 보이는 안채는 팔작의 형태이고 우측의 사랑채는 우진각 지붕형태입니다.

 

 

예전에 사용했을 부엌 살림살이가 이곳에 있습니다. 절구부터 시작해서 소주를 만들 수 있는 기구도 있고 여러가지 모양의 도마도 있는것이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마당 한가운데 우물이 있습니다. 물이 많이 나오는곳에 그대로 우물을 만들어서 물을 퍼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이곳의 단은 새로 쌓은거라네요.

 

 

살짝 욕심이 났던 작품입니다. 저정도 만들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기자기하면서도 여러가지의 나무와 식물의 균형이 조화롭게 보입니다.

 

 

정순왕후 생가의 바로 앞에는 350여년 되었다는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역사상 유명한 인물이었던 정순왕후가 태어났던 곳이기도 하며 독림운동가 김용환의 생가지인 이곳은 효종이 김적에게 하사한 가옥이라고 합니다. 정순왕후 생가로 알고는 있지만 실제 태어난 곳은 외가가 있던 여주읍에서 태어나고 이곳에서 자라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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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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