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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였던 네 명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청대사는 청양과 보령사이에 위치한 국도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순흥안씨 문중 출신 네 분 애국지사 (안창식, 안항식, 안병찬, 안병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94년 충청남도의 지원을 받아 순흥안씨종친회에서 건립하였다고합니다. 부자가 나라의 넘어가는 것을 분개하며 일어난 것이죠. 안창식선생은 두 아들 병찬, 병림과 함께 1895년 을미의병에 투신했습니다.

 

 

 

 

향교를 들어가는 홍화문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아는 홍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입니다. 조선 초기의 양식을 보이며 조선중기의 대문인데 오래된 고택등에 만들어져 있죠.

 

 

안병찬 선생을 기리고 있는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1895년 12월 1일 홍주성에 입성할 게획을 세우고 민병등을 모아 홍주의병을 거의하도록 도왔습니다. 안병찬 선생은 1895년 을미의병을 주도한 여파로 3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고종에 의해 석방되었습니다. 이후 1906년 민종식의 병오홍주의병의 참모로 활약하여 옥고를 치룬 후 1919년 파리만국강화회의에 장서서명사건으로 체포되어 다시 옥고를 치룹니다.

 

 

저는 향교인줄 알았습니다. 분위기가 향교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들이었던 안병림 선생은 민종식의 병오홍주의병 당시 참모사 및 돌격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안항식 선생은 1906년 4월 25일 병오홍주의병 당시 참모사로 활약하여 일제에게 체포된 후 대마도로 후송 감금되었다가 4년만에 귀국하였습니다.

 

 

나무라는 것이 묘합니다. 대부분 오래된 고택이나 향교에 가보면 꼭 나무가 한그루씩 심어져 있습니다. 고즈넉한 것이 참 좋습니다.

 

 

 

안에는 건물 한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려고 했던 부자가 이곳에 위치한 이곳은 숭고한 나라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홍주의병 활동으로 안창식 선생의 3부자는 옥고를 치렀으며 3·1운동 당시 유림들의 독립선언이라고 부를 수 있는 파리장서 사건까지 참여했던 그 흔적을 보고 떠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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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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