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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 발굴을 해왔지만 예산 부족으로 인해 대규모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취락, 방어, 분묘시설을 함께 갖춘 복합유적으로 국내 최대의 청동기 유적입니다. 1974년 4월 석관묘에서 비파형동검이 처음 발견되면서 2년뒤인 1976년 4월 6일 국가사적 제249호 지정되었습니다. 1975년부터 12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송국리 문화가 한반도의 남부지방을 거쳐 일본 야요이 문화의 형성기에 북구주지역까지 파급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곧 청동기문화체험 축제가 열립니다. 제4회 부여 송국리 축제로 5월 초에 열린다고 하네요.

 

 

주차장이 꽤 넓은 편이지만 아직 본격적인 개발이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차를 세우고 이곳으로 걸어올라가면 박물관이나 영상실을 볼 수 있습니다.

 

 

부여 송국리 선사취락지 자료관이라고 그다지 크지 않은 크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500미터쯤 올라가면 부여 송국리 유적이 나오고 우측으로 1km정도 가면 부여 산직리 지석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냥 방문해보았는데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영상도 보여주십니다. 아는 사람이 드물다며 열심히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송국리 집자리 유적이 조금 특이한 것은 장방향 형태와 원형 형태를 띄고 있는데 내부 중앙에 구덩이를 파서 지열등을 이용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방형계의 송국리형 집자리는 맞배형 내지 사모지붕 형태로 복원되고 있으며, 원형계의 송국리형 집자리는 원추형 내지 하원상 맞배형으로 복원이 추론되고 있다고 합니다.

 

 

상당히 넓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적지 않은 평지가 있으며 아래로는 금강 하류가 있어서 살기에는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거지의 형태를 미니어쳐형태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송국리선사취락지에서는 많은 출토유물이 나왔는데 비파형동검과 요령식도끼로 대표되는 요령식 청동기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어 새로운 청동기 문화가 결합된 독특한 중부지방 청둥기 문화를 형성하였습니다.

 

 

송국리에서는 많은 무덤들이 발견되었는데 비교적 정상부에 해당하는 구릉상에 계획적인 의도를 가지고 석관묘, 옹관묘, 토광묘 등을 일정한 간격으로 조성한 듯 보입니다.

 

 

송국리에서 거주했을 사람들의 집터를 이렇게 축소해서 표현해놓았습니다.

 

출토된 대부분의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나 부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지만 이곳에도 일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토기도 출토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쌀이 탄상태로 발굴이 되었는데 일찍이 농경문화가 안착하였음을 알려주는 결과입니다.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이곳을 조성하는 계획표입니다. 지원지구, 야외재현지구, 발굴재현지구, 자연생태보전기구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지정면적이 무려 535,756 평방미터나 됩니다.

 

위쪽에 올라가보면 이렇게 옛날에 살던 모습을 재현해놓았습니다. 목책과 환호 망루 등을 조성해놓아 청동기시대 송국리 방어시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2008년 발굴에서는 적색마연토기, 발형토기, 완형토기, 호형토기, 저부유공토기를 비롯한 무문토기류와 흠자귀, 돌화살촉, 돌칼, 삼각형 반달돌칼과 같은 석기류 등 송국리 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백제의 고도로서 수많은 문화유적을 보유하고 있는 부여는 한반도에 살던 인류가 문명 활동을 전개하는데 유리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백제가 부여로 천도하기 이전에 화려한 선사문화가 있었으며 청동기시대 선사인의 풍요로운 땅으로써 청동기인의 삶의 역사를 가진 곳이 송국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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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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