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영조때의 서원이 사찰로 바뀐 곳이 있습니다. 바로 강당사로 불리는 사찰입니다.

광덕산에 위치한 조계종 사찰 강당사는 조선 영조 때 경연관을 지낸 외암 이간 선생의 지기인 윤혼성생과 학문을 강론하던 서원이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있자 이를 모면하기 위해 마곡사에서 불상 하나를 모셔다 봉안하여 사찰의 시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면서 오다가 1995년 조계종 비구니 월해, 종민 두 스님이 강당사와 인연이 닿아 1999년에 대웅전을 중창하고 2002년 고산대종사의 증언으로 삼존불과 후불탱화를 모시어 사찰의 면모를 갇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강당사에 있는 외암문집 판각이 지방문화재 333호로 지정되어 보관되어 있습니다.

유교가 조선 말에는 종교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유교를 이끈 인물인 외암선생과 불교의 교리와 무언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유교를 가르치던 강당사의 전 흔적인 불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간과 뗄레야 뗄수 없는 강당사네요.

이간은 일찍이 문장과 학문에 매진하였지만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한 번도 응시하지 않았는데 불구하고 인근의 젊은 학자들과 교류하며 학문을 논했다고 합니다. 이곳 관선재의 본래 이름은 외암정사였습니다. 관선재에 머물며 지기와 학문에 매진하였을 과거가 그려지는 느낌입니다.

 

 

강당사는 이 하천을 넘어 다리를 건너가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간의 논쟁에 걸맞게 자연과 어우러져 있습니다. 사람과 사물, 앞에 있는 초목이나 금수가 인물과 같은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이간은 일찍이 사람과 사물은 모두 오상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었으며 본질적으로는 같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랑캐라고 불리우던 청나라도 인정해야 되는 대상이며 청의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북학론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원래 서원이었던 곳이라서 그런지 절보다는 공부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잠시 강법사라고 불리우다가 다시 강당사로 바뀌었고 관선재라고 해도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불교에서 대웅전이 빠지면 안되겠죠. 대웅전이 언덕 위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불상은 마곡사에서 빌려와 모셔놓고 절로 위장하였던 강당사는 외암서사의 현판도 떼어졌지만 건물은 겨우 건질수 있었습니다. 유교에서 불교로 자연스럽게 바뀐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심오한 생각을 이미 조선시대에 했었습니다. 사람과 금수의 근본적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사람의 가치와 권위를 유지하려는 입장이었던 것은 지금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사람과 금수의 차이는 물론이고 나아가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을 서로 분별함으로써 기존의 체제와 질서를 지키려는 가치관은 지금도 지속되는 것 같네요.

 

이곳은 문천사로 조선 영조 때 경연관을 지낸 윤혼선생을 위해 제향을 올리는 곳입니다. 문은 이간의 익호인 문정에서 따온 글자이고 천은 윤혼 선생의 아호 천서에서 따서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안에는 외암 이간 선생과 윤혼 선생 두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느린세상걷기
: